김현수 팀장은 백화점 인테리어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다.
다년간의 경험과 수많은 성공적인 프로젝트 덕분에 그는 회사 내에서도, 그리고 업계에서도 꽤나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는 그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자, 뜻하지 않은 위기를 가져다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가 맡은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유명 의류 브랜드의 매장 리뉴얼이었다.
이 브랜드는 전 세계에 걸쳐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모든 매장이 동일한 품질과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력한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조명에 있어서는 매우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었고, 브랜드에서 추천하는 특정 조명판 제조사인 루미스페이스(LumiSpace)의 제품을 사용해야만 했다.
김현수 팀장은 이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프로젝트의 예산과 일정에 맞추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입찰 경쟁에서 이겨 수주한 프로젝트이기에 이미 예산은 매우 타이트했고, 루미스페이스사의 제품은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는 회사의 재정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루미스페이스의 제품 대신 과거 간판 업종에서 자주 사용하던 도광판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선택이 처음에는 현명한 절약책으로 보였다.
시공이 진행되면서 초기 작업은 순조로워 보였다.
도광판을 설치한 매장은 외견상 문제없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한 것은 매장 조명 테스트가 시작된 후였다. 도광판이 의류 진열대 위에 설치되자,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명은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고, 음영이 생기면서 의류가 매장에서 강조되어야 할 그 빛을 잃어버렸다. 브랜드가 요구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열된 의류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전체 매장의 인테리어가 흐트러져 보였다.
김현수 팀장은 즉각적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브랜드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품질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이 문제를 방치했다가는 브랜드 측에서 인테리어 회사에 책임을 물어 큰 손해를 입힐 것이 자명했다. 김현수는 밤을 새워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두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기존에 설치된 도광판을 유지한 채로 최선을 다해 문제를 개선하거나, 모든 것을 철거하고 브랜드의 요구대로 루미스페이스사의 조명판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결국 두 번째 선택을 하기로 했다.
이 선택은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했으며, 회사의 손실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객의 요구와 브랜드의 명성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모든 책임을 지기로 마음먹었다.
김현수는 루미스페이스사에 직접 연락해 조명판을 주문했고, 이미 설치된 도광판을 모두 철거하도록 지시했다.
철거 작업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었으며, 이미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모든 작업을 되돌려야 한다는 부담감은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밤낮으로 작업을 감시하며 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그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매장은 마침내 브랜드가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루미스페이스사의 조명판이 설치되자, 매장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진열된 의류는 고급스럽게 빛났고, 매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브랜드의 명성에 걸맞게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김현수와 그의 회사에 큰 재정적 부담을 안겨주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나서도 김현수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브랜드 측에서 품질 문제로 인한 손해를 보상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약에 명시된 잔금 지급도 불확실해졌다. 김현수는 즉시 브랜드 측과 협상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왜 필수적이었는지, 그리고 브랜드의 요구를 최종적으로 충족시켰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설득력 있는 논리와 진정성 덕분에 브랜드 측은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자 했다.
결국 양측은 법적 다툼 없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브랜드 측에서는 추가 비용에 대해 일부 보상금을 지불하기로 했고, 인테리어 회사도 나머지 비용을 자체적으로 부담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민사소송의 위험은 사라졌으며, 잔금도 예정대로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사건은 김현수 팀장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비용 절감이 중요하지만, 고객의 요구와 품질을 충족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점을 그는 깊이 깨달았다. 비록 이번 프로젝트에서 회사는 금전적인 손실을 입었지만, 김현수는 그보다 더 큰 가치를 얻었다고 믿었다. 고객과의 신뢰를 지킬 수 있었고, 그의 결정이 결국 회사를 지켜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그에게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었다.
앞으로의 프로젝트에서 그는 고객의 요구를 철저히 분석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품질을 타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현수는 이번 사건을 통해 성장했고, 그의 팀 역시 이 경험을 공유하며 더욱 단단해졌다.
몇 년이 지나 김현수는 이번 사건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감사했다.
그가 만약 당시 비용 절감만을 우선시해 도광판을 유지했다면, 결과는 참혹했을 것이다. 브랜드와의 관계도 끊어졌을 것이고, 회사는 손해배상 소송으로 인해 더 큰 위기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객의 요구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으며,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