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N산업뉴스 - 박영국 기자]
오는 2012년부로 교토 체제가 마무리되고 ‘발리로드맵’으로 대체되면서 국내 기업들에게도 기후변화협약이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해 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폐막된 제1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발리로드맵에 따라 당사국들은 향후 2년간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되며, 2009년 당사국총회에서 의무감축량이 최종 결정된다.
도쿄의정서 체제 하에서는 의무감축량 부과가 없어 온실가스 감축 스케줄에서 한 발 물러서 있던 우리 기업들도 2013년 이후 포스트 교토 체제에 대비해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와 관련, 각종 환경 규제에서 주요 타깃이 되고 있는 국내 화학기업들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고, 아직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만 느끼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준비할 부분은 어떤 게 있을지 알아본다.<편집자 주>
탄소시장, 2010년까지 1천500억달러 규모 전망
기후변화협약과 관련, 기업들에게 기회요인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탄소시장 진출이다.
교토의정서에서 채택된 ‘교토 유연성체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수단으로 시장 원리를 도입하고 있다.
먼저 국제배출권거래제도(IET : International Emission Trading)는 국가별로 부과된 배출쿼터의 매매를 허용하는 것이고, 청정개발체제(CDM : Clean Development Mechanism)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투자해 감축한 온실가스의 일정량을 자국의 실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또, 공동이행제도(JI : Joint Implementation)는 선진국이 다른 선진국에 투자해 감축한 온실가스의 일정량을 자국의 실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선진국 사이의 공동 프로젝트 추진을 유도한다.
우리나라는 2012년까지는 별도의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없어 CDM을 통해서만 배출권 거래가 가능하지만 포스트 교토 체제에서는 IET와 JI로의 참여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교토의정서 체제 하에서 온실가스 절감 노력을 통해 할당된 목표를 초과 달성한 국가와 기업은 초과 달성분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얻게 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부족분만큼의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교토의정서에서 추구하는 ‘시장원리 도입’의 성과는 ‘탄소시장’의 형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EU는 지난 2005년 1월 세계 최대 탄소 시장인 ETS(Emission Trading Scheme)를 개설, 배출허용권을 25개 국가에 할당했으며, 현재 EU ETS 내에서 약 82억유로 규모의 배출권이 거래되고 있다.
또, 일본, 캐나다에서도 국내 거래시장을 개설했고, 우리나라도 올해 중으로 탄소시장 형성에 필요한 탄소감축실적 발급 및 탄소시장 참여유인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자발적 감축’을 기치로 내건 미국과 호주 등 비(非)교토의정서 국가 역시 자체적으로 탄소거래시장이 형성되고 있으며, 각국 정부와는 별도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프로젝트 형태로 거래하는 자발적 시장도 나타나고 있다.
그밖에 탄소 배출과 관련이 없는 기업이나 개인이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고 있음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소량의 배출권을 상징적으로 구매하는 소매시장도 형성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을 거래하는 탄소시장은 온실가스 규제 본격화와 EU 배출권 시장의 활성화, CDM(청정개발체제) 프로젝트의 본격 가동 등의 요인에 따라 지난해 300억달러 규모에서 2010년 1천500억달러로 5배의 성장을 나타내는 등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에너지 다소비국 중 하나인 한국으로서는 2012년 이후 포스트 교토체제 하에서 온실가스 감축의무 부과 압력이 클 것으로 예상돼 이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1990~2004년 사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은 연평균 4.7%로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국내 탄소시장규모는 2005~2006 누적치로 1억달러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새롭게 추진된 프로젝트를 감안하면 지난해 말까지 누적 시장규모는 1억3천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3천680만CO2t으로 1995년(4억3천150만CO2t) 대비 17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트 교토체제 하에서 우리나라에 1995년 대비 5%의 감축 의무가 부여될 경우 연간 49억달러의 온실가스 감축비용이 소요될 전망이다.
국내기업, 한화·후성·휴캠스 등 탄소시장 진출
일부 국내 기업들은 일찌감치 탄소시장에 진출해 포스트 교토체제에 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 탄소시장에 가장 먼저 뛰어든 회사는 후성그룹 계열 울산화학 자회사인 퍼스텍이다. 퍼스텍은 유피씨(UPC Corporation), 일본 이네오스(INEOS Fluor Japan)등과 공동으로 불소화합물(HFC23) 열분해 처리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울산화학공장에서 에어컨용 냉매인 HCFC22 생산시 배출되는 부산물수소불화탄소(HFC23)를 일본 이네오스사의 열분해 기술을 이용해 소각하는 것으로, 140만t의 배출권을 인정받아 일본, 영국 등에 판매했다.
정밀화학 기업인 휴켐스는 지난해 4월 오스트리아의 카본(Carbon)사와 공동으로 전남 여수에 위치한 3기의 질산 공장에 아산화질소(N2O) 저감설비를 완공했다. 설비 운영을 통해 연간 145만t의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다.
풍력발전 업체인 유니슨도 자회사인 강원풍력발전단지와 영덕풍력발전단지가 탄소배출권을 획득함에 따라 연간 25만t의 배출권 판매가 가능하다.
대기업 중에서는 한화그룹의 (주)한화가 온산공단 질산공장에 온실가스 감축시설을 설치, CDM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화는 2006년 말부터 일본 미쯔비시상사와 공동으로 이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지난해 5월 초 UN에 등록했다. 이번 사업은 질산공장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N2O를 배출 직전 촉매를 이용해 분해 처리하는 사업으로 연간 28만t의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다.
LG그룹의 LG상사도 지난해 3월 LG필립스LCD와 온실가스 저감 사업인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에 대한 업무제휴협약을 체결하며 탄소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양측은 LG필립스LCD의 경기 파주 및 경북 구미 공장에 온실가스 저감시설을 건설, 내년 하반기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에 나설 계획이다.
LG상사의 업계 라이벌인 삼성물산의 경우 중국과 동남아 등지의 온실가스 저감시설에 대한 투자를 통해 탄소시장 진출을 검토하는 등 일찌감치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EBN산업뉴스 2008-03-24]